퓨리오사AI 엔비디아 독주에 도전하는 한국 AI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
퓨리오사AI의 창업 역사부터 2세대 칩 RNGD 양산, 메타 인수 거절, LG유플러스 협력까지 한국 AI 반도체 스타트업의 현주소와 전망을 심층 분석합니다.
퓨리오사AI 공식 홈페이지: furiosa.ai
엔비디아 천하에 균열을 내는 한국 스타트업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에서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GPU 시장의 80퍼센트 이상을 엔비디아가 차지하고 있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벽에 균열을 내겠다고 나선 한국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퓨리오사AI(FuriosaAI) 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퓨리오사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영화에서 차용한 이름이고 그들의 제품인 워보이 역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20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25년 메타(Meta)로부터 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인수 제안을 받고도 이를 거절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리고 2026년 1월, 2세대 AI 칩 RNGD(레니게이드) 의 양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단순한 기술 데모 수준을 넘어, 실제 기업 고객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퓨리오사AI의 창업 배경부터 핵심 제품, 상용화 현황, 그리고 이 회사가 그리는 미래 전략까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부상에서 시작된 창업, 삼성과 AMD를 거친 설계 장인의 도전
퓨리오사AI의 시작은 다소 극적입니다.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백준호 대표 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 입학한 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미국 AMD에서 GPU 설계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 엔지니어였습니다.
창업의 직접적인 계기는 뜻밖에도 부상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사내 축구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고, 긴 재활 기간 동안 스탠퍼드대학교의 온라인 AI 강의를 수강하며 기술의 흐름을 읽게 됐습니다. 백 대표는 “AI가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복귀 후 바로 사표를 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 동료였던 김한준 CTO 와 의기투합해 2017년 4월, 단 3명의 멤버로 퓨리오사AI를 설립했습니다.
같은 해 4월 네이버 D2SF 로부터 첫 투자를 유치하며 출발한 회사는 이후 꾸준히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성장했습니다. 2019년 네이버 등으로부터 80억 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확보했고, 2021년에는 시리즈 B, 2023년에는 시리즈 C를 거치며 자금과 인력 모두를 키워 나갔습니다. 2025년 7월에는 시리즈 C 브릿지 라운드에서 1,700억 원을 유치하며 기업가치 약 1조 원의 유니콘 기업 으로 도약했습니다. 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케이스톤파트너스 등이 투자에 참여했으며, 누적 투자금은 약 3,417억 원에 달합니다.
1세대 워보이에서 2세대 RNGD까지, 제품의 진화

퓨리오사AI의 제품 역사는 두 세대로 나뉩니다. 첫 번째 제품인 워보이(Warboy) 는 컴퓨터 비전 분야에 특화된 NPU(신경망처리장치)입니다. 2021년 8월 시제품이 처음 나왔고,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14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되었습니다. INT8 기준 최대 64 TOPS(초당 1조 번의 연산)의 처리 속도를 제공하며, 이미지 및 영상 분석, 지능형 교통관리, 광학 문자인식 등의 영역에서 활용되었습니다. 2023년 4월부터 양산에 돌입한 워보이는 퓨리오사AI가 실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음을 증명한 이정표였습니다.
그러나 워보이는 비전 특화 칩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AI 시장의 중심이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LLM) 추론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퓨리오사AI는 더 야심 찬 2세대 칩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RNGD(레니게이드) 입니다.
RNGD는 TSMC 5나노미터 공정 으로 제조되며, HBM(고대역폭메모리) 을 탑재한 고성능 데이터센터용 AI 추론 칩입니다. 퓨리오사AI 독자 개발한 TCP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GPU 기반 시스템 대비 약 2.5배 높은 랙당 연산 밀도 를 제공합니다. 같은 공간과 전력 조건에서 훨씬 더 많은 AI 추론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품은 두 가지 형태로 공급됩니다. RNGD PCIe 카드 는 180와트(W)의 저전력 설계로 기존 서버에 바로 장착 가능한 AI 가속기입니다. NXT RNGD 서버 는 이 카드 8장을 탑재한 4U 랙마운트 서버로, 시스템 전체 소비 전력이 3킬로와트(kW)에 불과하면서도 표준 랙 환경에 최대 5대를 장착해 랙당 최대 20 PFLOPS(INT8)의 AI 추론 성능을 구현합니다. 2024년 하반기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열린 Hot Chips 2024 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2026년 1월 TSMC로부터 1차 양산 물량 4,000장을 인도받으며 양산 시대를 열었습니다. 에이수스(ASUS)가 카드 제조 공정을 담당하고 있으며, 올해 연간 2만 장 양산이 목표입니다.

메타의 1조 원 인수를 거절한 이유
퓨리오사AI를 전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린 사건은 2025년 초 메타(Meta)의 인수 시도였습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메타는 약 8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 규모로 퓨리오사AI 인수를 타진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이끄는 메타가 직접 관심을 보일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백준호 대표는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백 대표는 “한 기업이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는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기술 기업들이 AI 컴퓨팅 자원을 단일 칩 제조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철학이 거절의 배경에 있었습니다.
이 결정은 초기 투자자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을 낳기도 했습니다. 투자 회수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퓨리오사AI의 기업가치는 메타 인수 제안 당시보다 훨씬 높은 약 2조 원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회사는 현재 미래에셋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7,000억 원 규모의 프리IPO 를 추진하고 있으며, 2027년경 코스닥 또는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듀얼트랙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빠르게 확장되는 파트너십과 상용화 생태계
퓨리오사AI의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칩 자체의 성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프트웨어 최적화, 시스템 통합, 그리고 고객사와의 구체적인 협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2026년 들어 퓨리오사AI는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대형 협력은 LG유플러스 와의 제휴입니다. 양사는 2026년 3월 MWC26 현장에서 소버린 AI 어플라이언스(Sovereign AI Appliance) 공동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습니다. 소버린 AI 어플라이언스란 데이터가 외부 클라우드로 전송되지 않고 기업 내부 인프라에서만 처리되는 일체형 AI 장비를 말합니다. LG유플러스의 기업용 AI 플랫폼,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 4.0, 그리고 퓨리오사AI의 RNGD 칩이 결합되는 구조입니다. 외부 네트워크 접속이 제한되는 공공, 국방, 금융, 의료 등 보안 민감 분야에서 강력한 수요가 예상됩니다.
LG CNS 와의 협력도 주목할 만합니다. 양사는 2026년 2월 NPU 기반 에이전틱 AI 플랫폼 개발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으며,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LG AI연구원 컨소시엄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LG CNS는 퓨리오사AI의 RNGD를 적용한 K-엑사원 기반 공공 AX(AI Transformation)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더존비즈온 과도 2026년 2월 MWC26에서 AI 솔루션 글로벌 사업화 MOU를 체결했습니다. 더존비즈온의 기업용 AI 솔루션 원(One) AI에 퓨리오사AI의 RNGD를 결합해, 고가의 외산 GPU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상용 수준의 AI 추론 성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외에도 의료 AI 기업 딥노이드 와의 생성형 의료 AI 상용화 협력, AI 모델 최적화 기업 노타 와의 기술 공급 계약, 인하대학교 와의 AI 반도체 공동 연구 및 인재 양성 협력 등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TSMC가 위탁 생산을, SK하이닉스가 HBM을 공급하는 글로벌 공급망도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어, 단순한 스타트업을 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는 모습입니다.
소버린 AI와 탈(脫)엔비디아, 퓨리오사AI가 그리는 미래
퓨리오사AI의 전략적 방향은 명확합니다. 엔비디아 GPU가 지배하는 AI 학습 시장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는 AI 추론 시장 에서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을 무기로 대안 세력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백준호 대표가 Hot Chips 2024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RNGD는 메타의 거대 언어 모델 라마(Llama)를 구동할 때 엔비디아 최상위 칩보다 전력 효율이 2배 이상 뛰어나다는 검증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전력 효율성은 단순한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경제적 필연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이미 글로벌 이슈가 되었고, 추론 워크로드는 학습과 달리 24시간 365일 상시 가동되어야 하므로 전력 효율이 곧 운영 비용을 좌우합니다. 퓨리오사AI가 추론 특화 칩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이 흐름을 정확히 읽은 결과입니다.

나아가 LG유플러스와 추진하는 소버린 AI 전략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닙니다. 글로벌 AI 추론 시장이 엔비디아 칩과 빅테크 클라우드, 해외 AI 모델로 구성된 폐쇄적 구조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토종 AI 모델과 국산 AI 칩을 결합한 독자적인 추론 인프라 를 구축한다는 것은 기술 주권의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국방, 공공, 의료처럼 데이터가 해외 클라우드로 나가서는 안 되는 영역에서 이 전략은 특히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한국 정부도 이 흐름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AI 반도체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국산 칩의 데이터센터 실증 사업을 지원하는 등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한국의 산업 환경은, 퓨리오사AI 같은 팹리스 스타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남은 과제와 전망
물론 도전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소프트웨어 생태계이며, 전 세계 수백만 개발자가 이 환경에 익숙합니다. 퓨리오사AI가 하드웨어 성능만으로 이 장벽을 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체 소프트웨어 스택의 완성도를 높이고, 개발자 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재무적으로도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양산 물량을 확대하고, 글로벌 고객을 확보하며, IPO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으로 탄생한 국내 경쟁사와의 차별화 전략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퓨리오사AI가 걸어온 8년의 여정은 한국 AI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삼성전자와 AMD에서 쌓은 설계 역량, 워보이를 통해 검증한 양산 능력, RNGD로 증명한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 그리고 메타의 인수 제안을 뿌리치고 독자 노선을 택한 결단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백준호 대표는 “RNGD는 지속 가능한 AI 컴퓨팅을 위한 해답”이라며 “한국의 반도체 역량이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6년은 이 말이 현실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퓨리오사AI #FuriosaAI #AI반도체 #NPU #RNGD #레니게이드 #소버린AI #탈엔비디아 #백준호 #AI칩 #LG유플러스 #워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