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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AI 패러독스 보이지 않는 거인의 딜레마

AI를 가장 많이 쓰면서도 하나도 소유하지 못하는 유럽의 역설, 그리고 차세대 AI에서 역전을 노리는 두 거장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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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AI 패러독스 보이지 않는 거인의 딜레마

2026년 3월 22일 (일) AI 브리핑 - AI코리아24

유럽은 AI를 못 하는 대륙이 아닙니다. 유럽의 월간 LLM 사용자는 1억 3,300만 명으로 미국(6,100만 명)의 두 배가 넘습니다. AI 전문 인력도 약 32만 5,000명으로 미국과 거의 동수이고, 매년 미국과 비슷한 수의 AI 스타트업이 태어납니다. 딥마인드는 런던에서 창업됐고, 메타의 LLaMA 모델은 파리에서 발명됐습니다. 현대 AI의 역사는 유럽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수치를 알고 나면 더 이상한 질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많이 쓰고, 이렇게 많은 인재가 있는데, 왜 유럽에는 OpenAI도 Anthropic도 구글도 없는 것일까요. 2026년 3월 Prosus와 Dealroom이 발표한 보고서 “State of AI in Europe: The Invisible Giant”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유럽의 문제는 인재도 아니고, 사용량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구조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보고서의 핵심 발견을 분석하고, 같은 시기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움직임, 알파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실버와 딥러닝의 아버지 얀 르쿤이 각각 런던과 파리에서 차세대 AI 스타트업을 세운 사건을 함께 읽겠습니다. 두 흐름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라는 역설

Prosus-Dealroom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유럽은 AI를 가장 잘 소비하지만, 소유한 것은 하나도 없다.” 유럽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AI 서비스는 ChatGPT, Gemini, Copilot, DeepSeek이며, 모두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 만든 것입니다. 사용자가 입력하는 모든 데이터는 외국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유럽 밖으로 흘러갑니다.

인재 패러독스도 심각합니다. 유럽의 AI 인력 32만 5,000명 중 53%가 컨설팅, 제조업, 금융 같은 전통 산업에 묶여 있습니다. 미국은 그 비율이 40%입니다. 유럽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기술 기업에 종사하는 AI 인력은 33%에 불과한데, 미국은 46%입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유럽의 AI 고용주 상위 15개 기업 중 6개가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미국 빅테크라는 사실입니다. 유럽의 최고 인재가 유럽 기업이 아니라 미국 기업의 유럽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고서는 이 상태를 “레트로피팅 루프(retrofitting loop)” 라고 부릅니다. 엘리트 인재가 차세대 글로벌 플랫폼을 만드는 대신, 기존 레거시 산업을 보강하는 데 투입되는 구조적 순환입니다.

스타트업은 키우고 수확은 미국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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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매년 약 900개의 VC 투자 AI 스타트업을 만들어내고, 전 세계 AI 유니콘 창업자의 25%가 유럽 출신입니다. 2025년 유럽 AI 벤처 투자는 218억 달러로 전년 대비 58% 성장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초기 단계 투자만 보면 유럽(40억 달러)과 미국(50억 달러)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스케일업 구간에서 벌어집니다. 후기 단계 투자에서 유럽은 120억 달러, 미국은 1,410억 달러로 격차가 약 9배로 벌어집니다. 시드 단계 AI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전환율은 미국 4.8%, 유럽 1.5%입니다. 유럽 AI 스타트업이 대형 라운드를 유치할 때 리드 투자자의 73%가 미국 VC입니다.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유럽은 훌륭한 인큐베이터이지만, 형편없는 부모” 입니다. 키우기는 잘하지만, 성장한 자녀의 열매는 미국이 가져갑니다.

유럽 VC 펀드가 AI에 배분하는 비중은 전체의 12%에 불과합니다. 미국 VC는 76%를 AI에 집중합니다. 유럽의 연기금과 보험사에는 수조 유로가 쌓여 있지만, VC와 성장 자본에 대한 배분 비율은 0.12%입니다. 미국 대학 기금이 최소 기준선으로 삼는 3%와 비교하면 25분의 1 수준입니다. 보고서는 이 비율을 3%로만 올려도 약 1,000억 유로의 성장 자본이 즉시 확보된다고 추산합니다.

인프라와 규제, 이중의 병목

구조적 문제는 자본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럽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약 16%를 보유하고 있지만, AI 전용 연산 능력 기준으로는 글로벌의 5% 미만입니다. 독일의 경우 2025년 기준 대형 데이터센터에 공개적으로 확인된 AI 연산 능력이 H100 환산 약 26,000개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같은 기간 약 140만 개입니다. 유럽에서 의미 있는 LLM을 내놓은 기업은 미스트랄(Mistral) 하나뿐이고, 전 세계 신규 AI 특허 중 유럽의 비중은 3%입니다. 미국 70%, 중국 14%와 비교됩니다.

규제 환경도 발목을 잡습니다. AI Act, GDPR, Data Act, NIS2 등 100개 이상의 기술 관련 법률과 270개 규제 기관이 존재합니다. 독일의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GDPR의 엄격한 해석이 독일 파운데이션 모델의 출시를 수개월 지연시키고, 결국 연구 전용 라이선스로만 공개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AI 기업들은 GDPR 요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않으면서도 유럽 시장에서 자유롭게 모델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력망 연결에 평균 최대 7년이 걸리고, 전기료가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EU 국가보조금 규정 때문에 공공 AI 연산 자원을 민간이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보고서는 EU가 5년 내 글로벌 AI 연산 능력의 10~15%를 확보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현재 구조로는 그 경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두 거장이 유럽으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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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패러독스의 한가운데에서 의미심장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AI 역사를 직접 쓴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유럽에서 창업한 것입니다.

2026년 1월, 알파고를 설계한 데이비드 실버(David Silver) 가 15년간 재직한 구글 딥마인드를 떠나 런던에 이네퍼블 인텔리전스(Ineffable Intelligence) 를 세웠습니다. 세쿼이아 캐피털이 이끄는 시드 라운드에서 10억 달러를 유치했고, 설립 3개월 만에 기업가치 40억 달러를 인정받았습니다. 실버는 리처드 서튼과 공동 발표한 논문 “경험의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Era of Experience)“에서 “인간 데이터를 학습하고 미세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초인적 지능에 도달할 수 없으며, 새로운 세대의 에이전트는 주로 경험을 통해 학습함으로써 초인적 능력을 획득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알파고 제로가 인간의 기보 없이 스스로 바둑을 마스터한 것처럼, 직접 경험을 쌓으며 사고하는 강화학습 기반 자율지능입니다.

2026년 3월, 튜링상 수상자이자 딥러닝의 3대 대부 중 한 명인 얀 르쿤(Yann LeCun) 이 파리에 AMI 랩스(Advanced Machine Intelligence Labs) 를 공동 창업하고 10억 3,00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는 유럽 AI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기 투자입니다. 기업가치 35억 달러, 투자자에는 제프 베조스, 엔비디아, 삼성, 에릭 슈미트, 마크 큐반이 포함됩니다. 르쿤이 추구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 공간, 시간, 인과관계를 시뮬레이션하는 월드 모델(World Model) 입니다. 텍스트를 잘 생성하는 AI가 아니라, 물체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AI입니다.

두 사람의 방법론은 다르지만, 공통 전제는 하나입니다. 현재의 LLM으로는 진정한 초지능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공통 선택도 하나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유럽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두 회사의 합산 초기 투자금만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LLM 이후의 경쟁에서 유럽이 가진 기회

Prosus-Dealroom 보고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유럽은 생성형 AI 경쟁에서 졌습니다. 의미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내놓은 기업은 미스트랄 하나뿐이고,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의 경쟁에서 진 것이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닙니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유럽의 기회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신뢰를 해자(moat)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미국 기업이 클로즈드소스로 전환하고, 중국이 글로벌 확장을 위해 오픈소스를 택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신뢰할 수 있는 오픈소스 AI”라는 제3의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 유통(distribution)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AI가 앱에 내장되고 곧 에이전트로 진화하면, 모델보다 유통 채널이 더 중요해집니다. 셋째, 버티컬 AI입니다. 유럽 AI 투자의 75% 이상이 이미 전문 응용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에너지 분야 AI에서는 글로벌 VC의 50%를 유럽이 차지합니다. 넷째, 차세대 파동인 월드 모델입니다.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시스템, 즉 로보틱스, 자율 시스템, 제조, 물류를 가능하게 하는 AI는 아직 아무도 지배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영역이며, 유럽은 이 분야에서 미국과 동등한 인재 풀을 갖고 있습니다.

실버와 르쿤의 창업은 바로 이 네 번째 기회, 월드 모델과 차세대 AI 영역에 정확히 위치합니다. 두 사람이 유럽을 선택한 것은 감상적인 귀향이 아닙니다. 런던에는 딥마인드 본부와 자율주행 월드 모델 기업 웨이브(Wayve, 12억 달러 유치)가 있고, OpenAI도 “미국 외 최대 연구소”로 런던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파리에는 미스트랄, 허깅페이스, 그리고 프랑스 정부의 소버린 AI 정책이 있습니다. LLM 분야는 미국이 장악했지만, 월드 모델이나 강화학습 기반 차세대 AI는 아직 초기 단계이고 경쟁은 열려 있습니다. 유럽은 이 창문이 닫히기 전에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읽어야 하는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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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패러독스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의 AI 사용률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사용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ChatGPT, Gemini, Claude입니다. 삼성과 LG의 디바이스에 탑재되는 AI 모델도 대부분 외부에서 가져옵니다. 한국의 AI 인재 상당수가 대기업 내부에서 기존 사업을 보강하는 역할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레트로피팅 루프”와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동시에, 삼성이 얀 르쿤의 AMI 랩스에 투자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한국 기업이 차세대 AI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크래프톤이 게임 시뮬레이션 기술을 피지컬 AI에 접목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방산 AI에 투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럽 보고서가 제시하는 “버티컬 AI”와 “월드 모델”이라는 두 축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인재와 사용량이 있다고 해서 산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배분, 규제 설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파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LLM 경쟁의 승자는 이미 결정되었을 수 있지만, 차세대 AI의 승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 실버와 얀 르쿤이 20억 달러를 들고 유럽에서 그 싸움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 시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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