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생 95%가 AI를 쓴다 그런데 절반은 두렵고 절반은 생각을 멈췄다
영국 HEPI 조사에서 대학생 95%가 AI를 사용하지만 교수 지원은 절반에 못 미치고, 시험 답안에 AI 텍스트를 넣는 비율은 3년 만에 4배로 늘었습니다. AI 시대 대학 교육의 균열을 분석합니다.
2026년 3월 22일 (일) AI 브리핑 - AI코리아24
3년 만에 벌어진 일
2024년, 영국 대학생의 66%가 생성형 AI를 사용했습니다. 2026년, 그 수치는 95% 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전원입니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2025년 12월 영국 전일제 학부생 1,0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생성형 AI 조사 2026’의 결과입니다.
이제 질문은 “학생들이 AI를 쓰느냐”가 아닙니다. “AI를 어떻게 쓰고 있으며, 그 결과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입니다. 이 보고서는 그 질문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공적인 도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한 겹씩 벗기면, AI가 대학 교육에 만들어낸 균열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학생들 사이의 격차, 자신감과 실력 사이의 괴리, 그리고 대학이라는 제도가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그것입니다.
시험 답안에 AI 텍스트를 넣는 학생이 4배로 늘었다
먼저 배경을 짚어야 합니다. HEPI 조사에서 말하는 ‘assessed work(평가 대상 과제)’ 는 시험장에서 감독관 앞에 앉아 치르는 필기시험이 아닙니다. 영국 대학의 평가 체계는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영국 대학에서는 학점의 상당 부분이 코스워크(coursework) 로 결정됩니다. 에세이, 보고서, 포트폴리오, 24시간 테이크홈 시험(take-home exam) 등 교실 밖에서 작성해 제출하는 과제가 평가의 핵심입니다. 일부 모듈은 코스워크 비중이 60~100%에 달하며, 코로나 이후에는 대면 시험을 테이크홈 에세이로 대체한 대학이 더 늘었습니다. 즉, 학생들은 자기 방에서, 자기 노트북으로, 마감일까지 과제를 작성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합니다. 이 환경에서 AI 사용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맥락에서 숫자를 보면 심각성이 달라집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이러한 평가 과제에 직접 포함 시킨 학생의 비율이 2024년 3%에서 2025년 8%, 2026년 12%로 3년 만에 4배로 증가했습니다. “AI를 참고했다”가 아니라 “AI가 쓴 글을 제출물에 넣었다”입니다. 감독관이 없는 환경에서, 마감에 쫓기며, 클릭 한 번이면 에세이 한 편이 나오는 상황. 12%라는 숫자가 오히려 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 비율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 보고 방식의 조사에서 학업 부정행위를 솔직하게 밝히는 학생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중 어떤 방식으로도 AI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은 2024년 47%에서 2026년 6%로 급감했습니다. 3년 전에는 절반의 학생이 AI를 안 썼지만, 지금은 안 쓰는 학생이 사실상 없습니다.
가장 흔한 활용 방식은 개념 설명 요청(61%), 논문 요약(49%), 연구 아이디어 생성(40%), 사고 구조화(39%) 순입니다. 약 36%는 AI를 검색 엔진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검색 엔진 대신 AI에게 바로 물어보는 학생이 3명 중 1명이 넘는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건 ChatGPT 같은 범용 도구의 사용이 소폭 줄었다는 점입니다. 보고서는 이를 더 전문화된 AI 도구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AI 사용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분산되고 더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가장 자신 있는 학생이 가장 못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대목은 런던 퀸메리대학교의 사례 연구입니다.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임상 실습 과제를 수행시켰습니다. 한 그룹은 인간 피드백과 함께 AI를 사용했고, 다른 그룹은 AI만 사용했으며, 대조군은 AI 없이 수행했습니다. 결과는 직관에 반했습니다.
AI만 사용하고 인간 피드백 없이 공부한 그룹이 성적이 가장 낮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가장 높았습니다.
라케시 파텔 교수는 이를 “운전을 배우기 전에 스포츠카를 준 것”에 비유했습니다. AI가 모든 질문에 즉각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제공하다 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도를 실제보다 높게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학에서 말하는 ‘역 더닝-크루거 효과’의 AI 버전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AI가 가려버리는 현상입니다.
이 사례는 단순히 의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AI를 사용하는 모든 학습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보여줍니다.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안다는 착각”을 만들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둘로 갈라지고 있다
보고서는 학생들 사이에 깊은 분열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절반 가까운 학생이 AI가 학습 경험을 개선했다고 답했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루한 작업에 수 시간을 쏟는 대신, 비판적 분석과 깊은 이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반대편에서는 다른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두뇌를 전혀 쓰고 있지 않다.”
정보원 활용에서도 학생들은 셋으로 나뉩니다. 전통적 자료에 의존하는 그룹, AI에 의존하는 그룹, 둘을 결합하는 그룹이 대략 비슷한 비율로 존재합니다. 주목할 점은 전통적 자료를 거의 참고하지 않는 학생이 이미 10명 중 1명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이미 과거의 인프라입니다.
시험 형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3분의 2 이상의 학생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자유 서술형 응답에서 여러 학생이 AI를 쓰지 않았는데도 AI 탐지에 걸릴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I를 써서 과제를 쓴 적이 없는데도, 내 글이 AI 탐지에 걸릴까봐 항상 불안하다”는 응답이 대표적입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생은 더 잘 배우고 있고, AI에 의존하는 학생은 생각을 멈추고 있으며, AI를 쓰지 않는 학생은 오히려 의심받고 있습니다. 같은 캠퍼스 안에서 세 가지 현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로움의 도구가 된 AI
예상하지 못했던 데이터가 있습니다.
학생의 15% 가 AI를 친구 삼아 대화하거나, 외로움을 달래거나, 조언을 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5%는 순수하게 AI 기반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고, 4%는 인간 상담과 AI 상담을 병행합니다. 전체 학생의 40%가 AI가 자신의 외로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으며,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한 학생은 “가까이에 친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라고 답했고, 다른 학생은 “그냥 고립감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2026년에 처음 조사 항목에 추가된 이 데이터는, AI가 학습 도구를 넘어서 정서적 인프라 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대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정서적 지원을, 학생들이 스스로 AI에게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대안인지, 위험한 대체인지는 아직 누구도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학생의 3분의 2 이상이 AI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로부터 AI 관련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느끼는 학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대학이 AI 사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고 답한 학생은 3분의 1 수준입니다.
2024년에 비해 AI를 금지하는 대학은 크게 줄었습니다. 영국의 명문 연구중심 대학 그룹인 러셀그룹 소속 대학들은 2025년에는 오히려 뒤처져 있었지만, 2026년에는 AI 사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그룹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제도적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학생들의 체감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문학 전공 학생들이 AI에 가장 회의적이며, 지원도 가장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부유한 가정의 학생일수록 AI를 더 자주 사용하고,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AI 사전 경험이 더 많습니다. 전체 학생의 3분의 1이 대학에 입학할 때 AI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들어옵니다. 환경적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4분의 1에 가까운 학생이 AI의 생태학적 영향 때문에 사용을 꺼린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AI 역량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디바이드가 되고 있습니다. 부유하고, 이공계이고, 남성인 학생일수록 AI를 더 잘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뒤처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이 이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실 밖의 숙제는 이미 끝났다
이 보고서의 결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 AI 연구자 안드레이 카르파시의 주장입니다. 전 OpenAI 연구원이자 테슬라 AI 책임자였던 카르파시는 2025년 11월 “AI 숙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학교가 AI 사용을 단속하려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카르파시의 논지는 명확합니다. 첫째, 교실 밖에서 제출되는 모든 과제는 AI로 작성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AI 탐지 도구는 “실패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채점의 대부분을 교실 안에서 교사가 직접 감독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야 합니다. 셋째, 숙제는 학습을 위한 도구이지 평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며, AI와 함께 공부하는 것 자체는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Anthropic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2025년 4월 발표한 교육 보고서에서, 대학생과 Claude의 대화 중 거의 절반 에서 학생들이 분석, 창조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AI에게 위임하고 있다는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Anthropic은 답을 바로 알려주는 대신 학생의 추론 과정을 안내하는 ‘러닝 모드(Learning Mode)‘를 탑재한 ‘Claude for Education’을 출시했습니다.
HEPI 보고서도 비슷한 방향의 권고안을 제시합니다. 1학년 대상 체계적 AI 입문 과정 도입, AI 없는 시험과 AI 활용 시험을 구분한 명확한 평가 가이드라인 수립,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AI 도구 제공, 그리고 AI가 외로움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집중 연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한국의 상황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픈서베이가 전국 만 20~29세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생성형 AI 인지자 중 92.4%가 챗GPT를 사용해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에서는 대학 재학생 726명 중 91.7%가 과제나 시험에 AI를 활용했다고 답했습니다.
수치만 보면 영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현상을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정책으로 연결하는 대규모 종단 조사가 아직 없습니다. HEPI 조사는 2024년부터 매년 같은 방법론으로 동일 모집단을 추적하면서, 사용률뿐 아니라 학습 품질, 정서적 영향, 불평등 구조, 평가 방식 변화까지를 통합적으로 분석합니다.
한국 대학들은 AI 사용을 금지할 것인지 허용할 것인지의 이분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영국 러셀그룹 대학들이 1년 만에 금지에서 적극 장려로 선회한 것처럼, 한국 대학들도 조만간 같은 전환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전환이 데이터와 정책에 기반한 것이 될지, 아니면 뒤늦은 허용에 그칠지입니다.
영국 HEPI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AI 시대에 대학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라면, AI가 더 잘합니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지금 구조로는 학생의 절반이 생각을 AI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순간이 이미 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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