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 이후의 차세대 AI, 두 거장의 유럽 AI 부흥 계획
알파고의 데이비드 실버와 튜링상 수상자 얀 르쿤이 유럽에서 창업했습니다. LLM의 한계를 넘는 차세대 AI를 두고 유럽이 실리콘밸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참고 링크
AI 역사를 직접 써 온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유럽에서 창업했습니다. 알파고를 만든 데이비드 실버는 런던에, 튜링상 수상자 얀 르쿤은 파리에 각각 회사를 세우고, 합산 20억 달러가 넘는 초기 투자를 확보했습니다. 두 사람의 방법론은 다르지만 공통된 결론은 하나입니다. 현재의 LLM(대형 언어 모델)으로는 진정한 초지능에 도달할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ChatGPT, Gemini, Claude를 넘어서는 차세대 AI입니다.
데이비드 실버는 누구인가
데이비드 실버(David Silver, 1976~) 는 영국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로, 구글 딥마인드의 수석 연구과학자이자 런던대학교(UCL) 교수입니다. 2010년 딥마인드가 설립될 때 첫 번째 직원 중 한 명으로 합류했고, 공동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와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알파고(AlphaGo) 입니다. 2016년 이세돌 9단을 4대 1로 꺾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 설계자가 바로 실버였습니다. 이후 인간 기보 없이 스스로 바둑을 학습한 알파고 제로(AlphaGo Zero), 바둑뿐 아니라 체스와 장기까지 마스터한 알파제로(AlphaZero) 를 연달아 발표하며 강화학습 분야의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2019년에는 ACM 컴퓨팅상을 수상했습니다.
실버는 2025년 안식년을 거쳐 2026년 1월 딥마인드를 떠났습니다. 같은 달, 런던에 이네퍼블 인텔리전스(Ineffable Intelligence, “표현할 수 없는 지능”) 를 설립했습니다. 세쿼이아 캐피털이 이끄는 시드 라운드에서 10억 달러 를 유치했고, 기업가치는 설립 3개월 만에 40억 달러로 평가받았습니다.
얀 르쿤은 누구인가
얀 르쿤(Yann LeCun, 1960~) 은 프랑스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로, 제프리 힌턴, 요슈아 벤지오와 함께 “딥러닝의 3대 대부” 로 불립니다. 세 사람은 2018년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ACM 튜링상 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르쿤의 핵심 업적은 합성곱 신경망(CNN) 의 개발입니다. 1980년대 후반 벨 연구소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이미지 인식의 근간이 되었고, 오늘날 자율주행, 의료 영상, 안면 인식 등 거의 모든 컴퓨터 비전 분야의 토대입니다. 이후 뉴욕대학교(NYU) 교수로 재직하며 2013년 마크 저커버그의 영입으로 메타(당시 페이스북)의 AI 수석 과학자(Chief AI Scientist) 로 1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르쿤은 2026년 3월 9일, 파리에 AMI 랩스(Advanced Machine Intelligence Labs) 를 공동 창업하고 10억 3천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는 유럽 AI 역사상 최대 초기 투자 입니다. 기업가치는 35억 달러로 평가받았으며, 투자자에는 베조스 익스페디션스(제프 베조스), 엔비디아, 삼성, 에릭 슈미트(전 구글 CEO), 마크 큐반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 창업자로는 메타 전 연구과학 디렉터 마이클 라비야트와 나블라(Nabla) 창업자 알렉상드르 르브룬이 합류했습니다.
LLM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창업에 나선 배경에는 LLM에 대한 학계 내부의 회의론이 있습니다.
현재 상용 AI 챗봇의 핵심인 LLM은 인간이 만든 텍스트를 대량으로 학습해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운 문장을 생성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패턴 매칭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버는 지난해 리처드 서튼(강화학습의 창시자)과 공동 발표한 논문 “경험의 시대(Welcome to the Era of Experience)” 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 데이터를 학습하고 미세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초인적 지능에 도달하기 어렵다. 새로운 세대의 에이전트는 주로 경험을 통해 학습함으로써 초인적 능력을 획득할 것이다.”
르쿤은 더 직설적입니다. 2025년 다보스 포럼에서 “LLM의 패러다임은 앞으로 3~5년” 이라고 단언했고, TechCrunch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LLM은 실제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학계 밖에서도 한계의 증거가 쌓이고 있습니다. LLM 훈련에 필요한 인간 텍스트 데이터가 물리적 한계에 다가가고 있고, 빅테크 4사가 올해 데이터센터에만 6,5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지만 이 방식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메모리 칩 부족으로 스마트폰 출하량이 12~13% 감소하고, 애플이 맥북프로 가격을 400달러 올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실버의 길과 르쿤의 길
두 사람은 LLM의 대안으로 서로 다른 경로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목적지는 같습니다. 인간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는 차세대 AI입니다.
데이비드 실버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기반 자율지능을 추구합니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의 기보 없이 스스로 수백만 판을 두면서 인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AI가 직접 경험을 쌓으며 사고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 접근을 “경험을 통한 자율적 지능” 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네퍼블 인텔리전스는 아직 구체적인 제품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실버의 개인 사이트에는 단 한 줄, “저는 이네퍼블 인텔리전스의 CEO입니다”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세쿼이아 캐피털이 제품 계획도 없는 회사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알파고에서 알파제로까지 증명된 실버의 트랙 레코드와 강화학습이 열 수 있는 차세대 AI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입니다.
얀 르쿤은 월드 모델(World Model) 로 LLM의 한계를 극복하려 합니다. 월드 모델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 공간, 시간, 인과관계를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는 AI입니다. 텍스트만 잘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문을 밀면 어떻게 열리는지를 “이해”하는 AI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AMI 랩스의 공동 창업자 르브룬은 TechCrunch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초 연구에서 출발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6개월 만에 첫 매출을 올리는 일반적인 스타트업과 다르다. 상용화까지는 수년 이상 걸릴 수 있다.” 파리에 본사를 두고 몬트리올과 뉴욕에 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왜 유럽인가
ChatGPT의 OpenAI, Gemini의 구글, Claude의 Anthropic. 현재 LLM 시대의 주역은 모두 미국 기업입니다. 그런데 차세대 AI의 두 거장이 모두 유럽을 선택했습니다.
실버가 자리 잡은 런던은 구글 딥마인드 본부가 있는 곳이며, 실버 자신이 2010년부터 15년 넘게 연구해 온 도시입니다. 최근 OpenAI도 “미국 외 가장 큰 연구소”로 런던을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월드 모델 연구의 선구 기업인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브(Wayve)도 런던에서 12억 달러를 유치했습니다.
르쿤이 선택한 파리는 오픈소스 AI 선두주자 미스트랄AI, AI 모델 플랫폼 허깅페이스가 탄생한 곳입니다. 프랑스는 유럽의 “소버린 AI” 센터를 자처하며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르쿤 자신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프랑스인입니다.
스타트업 전문 매체 스티페드는 “LLM 분야는 미국이 장악했지만, 월드 모델 같은 차세대 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경쟁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유럽이 이 분야에서 미국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차세대 AI가 바꿀 것들
실버의 강화학습 기반 자율지능과 르쿤의 월드 모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AI를 지향합니다.
이것은 최근 산업계의 핵심 화두인 피지컬 AI와 직접 연결됩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피지컬 AI의 시대”를 선언했고, 크래프톤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게임 시뮬레이션 기술을 방산 AI에 접목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자율 드론 AI를 위한 실전 데이터를 동맹국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이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AI, 즉 차세대 AI입니다.
LLM이 “텍스트를 잘 생성하는 AI”였다면, 차세대 AI는 “현실을 이해하고 스스로 경험하며 행동하는 AI” 입니다. AMI 랩스에 엔비디아와 삼성이 투자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로보틱스와 자율시스템의 미래가 월드 모델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두 회사 모두 당장의 제품이나 수익 파이프라인이 없습니다. 상용화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실버의 이네퍼블 인텔리전스는 회사 이름부터 “표현할 수 없는 지능”으로, 아직 무엇을 만들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AI 역사를 직접 써 온 두 사람이 수조 원의 자금을 확보하고, LLM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으로 새 판을 짜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베조스, 슈미트, 큐반, 엔비디아, 삼성이 동시에 베팅했다는 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차세대 AI로의 전환이 시작됐다는 시장의 판단입니다.
LLM 시대의 중심이 실리콘밸리였다면, 차세대 AI의 중심은 런던과 파리가 될 수 있습니다. AI의 다음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고, 그 첫 페이지가 지금 유럽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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