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한국이 AI 패권 전쟁에서 맞닥뜨린 같은 문제 소유권의 함정
런던은 AI 소프트웨어 허브로, 한국은 AI 반도체 공급망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만들기는 하는데, 그 가치는 누구에게 가는가.
런던에 Anthropic, OpenAI, Google DeepMind가 동시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서울을 찾아 SK하이닉스 부스에서 사인을 남기며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Please Make More.” 두 나라는 AI 전쟁의 서로 다른 전선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둘 다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AI 패권 전쟁은 모델 성능 싸움을 넘어 인프라·인재·공급망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싸움으로 전환됐습니다. 런던은 소프트웨어 AI의 거점이 됐고, 한국은 그 AI가 돌아가는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 글은 두 나라가 어떻게 이 위치에 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둘 다 아직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런던이 AI 허브가 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2026년 1월부터 4월까지 단 4개월 동안 런던에서 AI 기업들이 계약한 사무실 면적은 56만5,000 평방피트입니다. 2025년 한 해 전체(21만 평방피트)의 2.7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Anthropic은 런던 킹스크로스 지역에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실을 열었고, OpenAI는 같은 지역에 500명 규모의 첫 번째 영국 상설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데미스 허사비스가 런던에서 DeepMind를 창업했고, 2014년 구글이 약 5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7,00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DeepMind는 이후 구글의 Gemini AI 모델 개발을 이끌었고, 졸업생들은 ElevenLabs, Wayve, Synthesia 같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을 만들었습니다. 런던에 AI 인재가 모이자 빅테크가 따라왔고, 빅테크가 오자 더 많은 인재가 모였습니다.
DeepMind CEO 허사비스는 런던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임피리얼 칼리지, UCL 같은 세계적인 대학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는 세계 10위권 대학이 4개나 있고, 이 대학들이 매년 AI 연구자를 시장에 공급합니다. 런던은 설계된 것이 아니라 10년에 걸쳐 축적됐습니다.
한국은 AI의 뇌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반면 한국의 강점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입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High Bandwidth Memory) 은 AI 가속기(AI 연산에 특화된 고성능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의 약 607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약 2530%를 차지합니다. 사실상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의 대부분을 한국이 공급하는 셈입니다.
2025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734억 달러(약 24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치로, AI 수요가 직접 이끈 성장입니다. 젠슨 황이 서울을 찾아 4박5일을 머물며 삼성, SK, 현대, LG, 네이버 수뇌부를 연달아 만난 것은 이 공급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Tortoise Media의 글로벌 AI 지수(2024)에서도 이 구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국은 인프라 세부 항목인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세계 6위 안에 들고, 특허·개발 부문에서는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 그런데 연구 부문에서는 12위에 그칩니다. 만드는 것은 잘하고, 연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입니다.
두 나라가 공유하는 한 가지 문제
여기서 핵심 질문이 등장합니다. 만들기는 하는데, 그 가치는 누구에게 가는가.
런던이 AI 인재를 키웠지만, DeepMind는 구글 것입니다. Anthropic이 런던에서 800명을 채용하지만, 그 800명이 만드는 가치는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귀속됩니다. TNW(The Next Web)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런던이 AI 2위 허브로 굳어지고 있다. 그런데 영국이 그 산업의 지분을 진짜로 갖게 될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SK하이닉스가 만든 HBM이 엔비디아 GPU에 들어가고, 그 GPU 위에서 OpenAI의 모델이 돌아갑니다. HBM을 공급하지만 그 반도체가 만들어내는 AI 가치는 엔비디아와 OpenAI로 흘러갑니다. 공급망의 위(소프트웨어)는 런던이, 아래(하드웨어)는 한국이 각각 쥐고 있지만, 그 사이 가장 많은 돈이 쌓이는 레이어는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있습니다.
The National News의 칼럼니스트 야사르 자라르는 이 구조를 역사적으로 짚습니다. 산업화 시대는 공장을 가진 나라가 이겼고, 석유 시대는 에너지를 통제한 나라가 이겼으며, 디지털 시대는 플랫폼을 만든 나라가 이겼습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전략 자산은 반도체, 데이터센터, 독점 모델, 에너지 인프라입니다. 공급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에게 런던 공식이 적용될 수 있을까
런던의 성공 방정식은 하나의 씨앗 사건(DeepMind 창업)이 10년에 걸쳐 인재 클러스터를 만든 구조입니다. 한국에도 그에 상응하는 씨앗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반도체 엔지니어 네트워크,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데이터, AI 인프라 투자 능력은 런던이 갖지 못한 자산입니다.
한국 정부는 2026년 AI 행동계획에서 독자 범용 AI 모델 확보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업스테이지, 트웰브랩스 같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DeepMind처럼 “졸업생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까지 이어지려면 한국의 씨앗 사건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런던이 10년을 필요로 했다면, 한국은 지금이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 기반이라는 런던에 없는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은 유리합니다. 문제는 그 자산을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씨앗으로 전환하는 경로입니다.
마무리-공급자와 오너는 다르다
런던은 소프트웨어 AI를 만들지만 가치가 미국으로 갑니다. 한국은 그 AI가 돌아가는 하드웨어를 만들지만 역시 가치는 미국으로 갑니다. 두 나라 모두 AI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습니다. 그러나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 소유권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TSMC(대만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도 대체 불가능하지만 AI 패권은 대만에 있지 않습니다.
공급자와 오너 사이의 거리가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질문입니다. 런던과 한국, 두 나라 모두 지금 그 답을 찾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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